'아내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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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음빛 작성일17-11-12 13:14 조회3,420회 댓글0건본문
화성신문/기사입력/2017/11/08[15:42]
‘아내의 손’
새벽 한 시경 집으로 들어간다. 아내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는지 안방에 불이 켜져 있지 않다. 아이 방도 조용하다. 나는 최대한 발꿈치를 들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내의 코고는 소리가 쿨쿨 들린다.
나는 겉옷을 벗고 아내 옆으로 눕는다. 다행히 아내가 잠에서 깨지 않아 오늘밤에는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주 퇴근 후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편이다. 때로는 회사일이 늦게 끝나서 집에 늦게 가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한 달에 다섯 번 정도 밤 9시 전후 집에 들어가고 나머지는 거의 새벽 한 시경 집으로 귀가한다.
신혼 때는 나의 늦은 퇴근시간 때문에 자주 다투기도 하였다. 이제 결혼 30년이 가까워 오니 아내도 나도 무덤덤해져가는 것 같다. 아내가 잠을 잘 때 코고는 소리를 내면서 잠을 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이전에는 아내가 코고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내가 언제부터 코를 골았지? 내심 놀랍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다. 내가 늦은 귀가를 해도 잠을 자는 것은 아내가 나를 믿어 주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포기한 것일까? 쌀쌀한 초겨울 바깥바람 만큼이나 새삼스러운 궁금증이 생긴다.
내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내라는 존재가 오늘은 내 눈에 확대되어 들어온다. 아내의 얼굴에 검은 버섯과 주름이 아름답게 보인다. 아내가 골고 잇는 코고는 소리가 가정을 지키고 아이를 키운 세월의 흔적인냥 젊었을 때 건강했던 뼈들이 늙어간다는 신호처럼 긁히는 소리로 들린다. 아내의 잠자는 모습이 애처롭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을 청해본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두통이 심하고 오한이 온다. 감기몸살이 왔나보다. 기침도 하고 화장실도 들락날락하다가 머리에 열이 심하게 나기 시작한다. 이불속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는데 아내가 눈을 감은채로 몸을 내게로 돌리고 거친 손으로 내 이마를 짚고 코를 곤다.
내 이마에는 막대기 같은 아내의 손이 얹어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내 몸이 부동자세가 되어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의 손이 얹혀있는 내 이마가 이상하다. 뜨겁던 열이 식어가는 듯 하고 지끈거리던 두통이 맑아지는 것 같다. 마치 아내의 손이 약손 같다.
나는 실눈을 하고 아내의 얼굴을 봤다. 아내는 여전히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감기몸살이 와서 괴로워하는 것을 아내의 손은 어떻게 알았을까?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다. 나는 아내의 거칠고 따뜻한 손 덕분에 편히 잠을 잘 수 있다. 내게 있어 아내는 놀라운 존재다. 마치 내 살과 심장의 일부인 듯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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