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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흔적 - 살아있다는 그 자체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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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음빛 작성일14-06-12 11:37 조회3,2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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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흔적 - 살아있다는 그 자체의 의미
윤정화의 심리칼럼(2014. 6. 10)
 
그토록 용서하며 살자고 잊으려 애썼지만 늘 목안의 가시처럼 숨을 쉴 때마다 짓누르며 압박해 오는 두통과 전신통증이다. 특히 날씨가 흐릴 때면 도끼로 머리를 찧는듯하고, 활활 타오르는 듯 시뻘겋게 치솟는 두통은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게 사는 것 보다 낫다는 생각에 숨을 쉬기가 힘들다. 아프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폭력이 있었을 때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시댁식구들과 남편이다. ‘그때 왜 경찰을 불러 법의 심판을 받게 하지 못했을까?’라는 후회가 있다. 더불어 떠오르는 생각은 ‘그때 일을 잊으려 애썼고 또한 용서하며, 그들에게 똑같이 상처주지 않고 살아왔기에 마음은 편하잖아, 잘했어’라는 두 마음의 갈등이 늘 있다.

이제는 남편이 시댁식구들과 경계선을 그어서 억울한 일이 생기는 일은 더 이상은 없다. 하지만 미치도록 괴로운 것은 이십년 전 나를 향한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인한 통증이다. 통증이 올라 올 때면 그때의 장면이 떠오르고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그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잊으려 잊으려 몸부림쳤고 살아보려고 피눈물을 삼키며 살고 있다. 하지만 매일 나를 괴롭히는 그때의 폭력으로 인한 통증은 고통이 되어 억울함과 수치심 분함과 죽고 싶은 우울감으로 상처가, 아픔이, 되살아나고 또 되살아난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심한 두통과 오른쪽 눈의 통증으로 살고 싶지 않고 죽고 싶다라는 생각에 자리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거실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운동을 하는 남편의 소리가 소름끼치게 싫고 남편에게 뛰어가서 내가 과거에 맞은 만큼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두통의 고통이 너무나 심하여 남편이 미워지고 그때 그 자리에서 나를 힘들게 했던 시댁식구들 모두를 그대로 내가 당한만큼의 폭력을 지금이라도 갚아주고 싶다.

잠시 후 딸이 모닝커피를 주겠다고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알았다고 하면서 딸을 방에서 내 보내고 이불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또 운다. 저 딸을 위해서라도 살아야한다. 내가 없으면 딸은 엄마없이 시집을 가야하고 시집가서 엄마한테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내가 그 자리에 있어주어야 한다. 이제 와서 내가 과거일로 남편과 시댁식구들에게 화를 낸다면 내 딸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삶에 자부심이 흔들릴 것이다. 지금까지 처럼 참자! 그리고 이겨내자! 그런데 너무 아프다! 고통스럽다!

과거의 그 폭력들이 내 삶에 큰 가시가 되어 나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상처투성인 나는 이제 용서의 수준을 넘어 내 자신이 고통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폭력의 흉한 흔적을 안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울부짖으며 끌어안아야 한다. 아마 이건 나의 생명을 던져 고통을 준 저들을 품어주고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는 아픔으로 인한 죽음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살아있다는 그 자체의 의미이고, 통증을 이기며 살고 있다는 위대함일지도 모른다. 그래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용서이고 수용이며 위대함이다. 나를 위하여 나의 자녀를 위하여 그리고 내가 용서한 저들의 참회를 위하여 숨소리를 내자. 이것이 곧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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